이사야 66장 3절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이 하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이 하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이 하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행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 이사야 66장 3절 -
나의 죄, 라는 이 단어가 종종 나에게 주는 인상은 '사실 나는 잘 모르겠는데, 하나님께서 불편해 하신다고 하니깐 고백해야 하는 또 회개해야 하는 무언가이지'이다. 그래서 나의 죄는 자주 어떤 허상과도 같이 느껴진다. 진지해야 대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 같지만 진지하게 대해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죄에 대한 인상과는 다르게, 자주 나는 나의 죄가 나의 마음을 좀 먹고 나의 마음 한 가운데에 심연을 만들어 놓는 것을 발견한다. 나의 죄는 나를 불안으로 밀어넣고, 나의 가치를 증명하도록 하고, 가치가 증명되지 못할 경우 다른 사람도 나도 나를 사랑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죄에 대한 나의 인상과 죄가 나의 안에 만들어 놓는 결과 사이의 괴리는 참으로 놀랍다. 나의 정신을, 나의 욕망을, 나의 자유를 조정하는 그 힘에 비해서 나에게 그다지 진지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들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기 전, 소와 양을 바치도록 하셨을 때에 동물의 숨을 끊고 그 동물의 정형을 해야하는 당사자는 제물을 바치는 당사자였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나아오는 모든 자가 그 동물을 죽이는 만큼, 그 생명을 죽이는 만큼의 그 진지함으로 죄를 다루기를 요구하셨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소를, 양을 잡는 것을 그저 도살하는 행위일 뿐인 것으로, 전혀 죄의 댓가를 생각하지 않는 의식으로 전락시켰다. 그들이 제사를 이렇게 일방적인 도살의 의식으로 전향시킨 것은 결국 그들이 진지하게 여기지 않았던 죄의 승리였다. 죄는 여기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욕망의 방향을 조정했는데, 생명을 죽임으로써 죄 그 자신에게 향하던 죄책을 바꾸어서, 도살을 함으로써 그들의 욕망을 긍정하는 방향으로 바꾸어버렸다. 부정한 방법으로 타인의 것을 빼앗아도, 가난한 자들을 무시하며 돌보지 않아도, 자신의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와 관계를 맺어도, 다시 도살을 하면 될 뿐이었다. 생명을 죽임으로써 죄를 억제한 것이 아니라, 죄를 짓기 위해 도살했다.
나의 마음은 어떠한가? 나는 무엇을 위해 도살하려 하는가? 내가 원하는 것은 여전히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는 다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그러하셨듯이 자신을 내어주어 이웃을 사랑하기를 원하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러하셨듯이 내가 미워하고 있는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살기를 원하신다. 나의 유일한 안식과 위로와 평안을 안정된 직장과, 편안한 집, 넉넉한 자산이 아니라 하나님 그 분께 두기를 원하신다.
하나님 당신께서는 내가 충분히 이해하지도 못하고, 사랑하지도 않고, 바라지도 않았지만 나에게 말씀하시고 나에게 그리스도를 내어주시고 나의 말을 들으십니다. 당신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도다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옳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
하나님 죄를 사랑해서 도살하는 패역한 백성이 여기 있습니다.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당신께서 원하시는 만큼 죄를 진지하게 대하게 하시고 그 죄를 죽이고 당신의 모든 말씀을 기뻐하는 자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